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55

이사야,
66장으로 된
작은 성경

심판으로 시작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끝나는 예언서,
그 한가운데 찔리신 종이 서 있다

이사야 1–66장
여는 글

이사야서는 신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선지서예요.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펴서 첫 설교를 하셨고(눅 4:17-21), 침례 요한은 자신을 이사야가 말한 "광야의 소리"라고 소개했어요. 그래서 이사야는 "구약의 복음서", 이사야는 "다섯 번째 복음서 기자"라고 불리기도 해요.

그리고 재밌는 우연이 있어요. 😄 이사야서는 66장인데 성경도 66권이에요. 1–39장은 주로 심판의 메시지인데 구약도 39권이고, 40–66장은 "위로하라"로 시작하는 회복의 메시지인데 신약도 27권이에요. 물론 장 구분은 훨씬 뒤에 붙은 것이지만요. 이름 속의 구원, 거룩 거룩 거룩, 임마누엘, 아침의 아들 계명성, 광야의 외침, 고난받는 종,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까지 따라가 볼게요.

1부

이사야는 어떤 책일까?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함께 노래한 책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로, 주전 740년 무렵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부름을 받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까지 예루살렘에서 활동했어요(1:1; 6:1).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고(주전 722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던(주전 701년) 격동의 시대였어요. 이사야는 왕궁에 드나들며 왕들에게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외쳤어요. 이사야서에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스물다섯 번 넘게 나와요. 이사야가 처음 만난 하나님이 바로 그 거룩하신 분이었기 때문이에요.

대이사야 두루마리1947년 사해 근처 쿰란 동굴에서 이사야서 66장 전체가 담긴 가죽 두루마리가 발견되었어요. 주전 2세기 말 무렵 필사된 것으로, 그전까지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보다 천 년쯤 앞서는데도 내용이 놀라울 만큼 같았어요.
66장의 두 부분1–39장은 앗수르 시대의 경고와 심판, 40–66장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40:1)로 시작하는 바벨론 포로 이후의 회복을 노래해요.

※ 40–66장을 누가 언제 썼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여러 견해가 있어요.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사야 한 사람의 예언으로 받아 왔고, 신약도 이 부분을 "선지자 이사야"의 말로 인용해요(요 12:38-41). 이사야가 므낫세 때 톱으로 켜져 순교했다는 전승도 있어요(히 11:37 참고).

이사야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거룩하신 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라는 이름이 책 전체를 꿰뚫어요.
2
메시아 예언
임마누엘(7:14), 한 아기(9:6), 이새의 줄기(11:1) 등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씀이 많아요.
3
종의 노래
42장, 49장, 50장, 52:13–53:12에 "여호와의 종"을 노래한 네 편의 시가 있어요.
4
위로의 메시지
40장부터는 포로 된 백성을 향한 위로와 회복의 약속이 이어져요.
5
새 하늘과 새 땅
책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새로 지으실 세상을 바라봐요(65:17).

이사야서의 심장은 53장이에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쓰인 이 노래는 우리 대신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비추고 있어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이름 속의 구원부터 새 하늘과 새 땅까지

1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긴 아이 이름

이사야 7:3 · 8:1-4, 18 · 히브리서 2:13

이사야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예샤야후", 곧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예수"(예슈아)라는 이름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예요. 😄 이사야는 이름부터 장차 오실 분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이사야는 아들들에게도 메시지를 이름으로 붙였어요. 첫째 아들 이름은 "스알야숩"(7:3),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둘째 아들 이름이 걸작이에요. "마헬살랄하스바스"(8:3). "노략이 속히 오리라, 약탈이 빨리 닥친다"는 뜻으로, 성경에 나오는 사람 이름 가운데 가장 길어요. 😄 아이를 부를 때마다 온 동네가 앗수르의 침략 경고를 듣게 된 거예요.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어요.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8:18). 가족 전체가 걸어 다니는 설교였어요. 히브리서는 이 구절을 예수님의 입에 넣어 인용해요(히 2:13). 이름으로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 이사야는 결국 "구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실 분을 가리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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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과 내 가족의 삶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주는 표징이 되기를 구합니다.
2

왕이 죽던 해에 본 보좌,
"거룩하다"를 세 번 외친 스랍들

이사야 6:1-8 · 요한계시록 4:8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6:1). 52년을 다스린 강한 왕이 죽고 나라가 불안하던 해, 이사야는 진짜 왕을 보았어요. 보좌 위에는 "스랍들"이 있었는데, "스랍"은 "불타는 자들"이라는 뜻이에요. 각각 여섯 날개로 얼굴과 발을 가리고 날며 서로 외쳤어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6:3). 히브리어에는 "가장 거룩하다" 같은 최상급 형태가 따로 없어서, 같은 말을 되풀이해 강조해요. 하나님의 성품을 이렇게 세 번 거듭 외친 것은 성경에서 이 장면과 요한계시록 4:8뿐이에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세 번이나 외친 거예요.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늘의 생물들이 밤낮 쉬지 않고 같은 노래를 불러요(계 4:8).

그 거룩 앞에서 이사야는 무너져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6:5). 그때 스랍 하나가 제단의 핀 숯을 가져와 그의 입에 대고 말해요.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은 제하여졌고 네 죄는 사하여졌느니라"(6:7). 그리고 하나님의 물음에 이사야가 대답해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6:8).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은 망할 수밖에 없지만, 제단의 불로 깨끗하게 하시는 은혜가 그를 보내는 사람으로 바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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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 부정함을 고백하고, 제단의 은혜로 깨끗해진 입술로 "나를 보내소서" 대답합니다.
3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 임마누엘

이사야 7:14 · 9:6 · 마태복음 1:23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유다 왕 아하스는 떨었어요.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7:2). 이사야는 하나님을 믿으라며 징조를 구하라고 하지만, 아하스는 앗수르에 기대기로 마음먹고 거절해요. 그때 이사야가 선포해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처녀"로 옮긴 히브리어 알마는 결혼할 나이의 젊은 여인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런데 예수님보다 200년쯤 앞서 번역된 헬라어 칠십인역은 이 말을 분명히 "처녀(파르테노스)"로 옮겼어요. 마태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그 이름의 뜻을 풀어 줘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두 장 뒤에는 그 아기가 더 자세히 그려져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헨델의 『메시아』는 이 구절을 기쁨에 찬 합창으로 만들었어요. 아기의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니요. 두려워 흔들리는 왕에게 하나님이 주신 징조는 군대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기로 오신 예수님이었어요.

※ 7:14가 이사야 당시에 먼저 이루어진 징조이면서 동시에 메시아를 가리키는지, 처음부터 메시아만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나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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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바람에 흔들리듯 마음이 흔들릴 때, 세상의 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을 의지합니다.
4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루시퍼"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이사야 14:4-15 · 누가복음 10:18

이사야 14장은 바벨론 왕을 조롱하는 노래예요.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14:12). "계명성"은 새벽에 가장 밝게 빛나는 금성이에요. 해가 뜨면 금세 사라지는 별이지요.

이 별이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서 "루키페르(lucifer)", 곧 "빛을 가져오는 자"로 번역되었어요. 그리고 이 구절이 교만해서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를 묘사하다 보니, 교회 역사에서 점점 사탄의 타락을 가리키는 말로 읽히게 되었어요. 😄 그래서 "루시퍼"가 사탄의 이름처럼 쓰이게 된 거예요. 하지만 원래 문맥은 하늘에 오르려던 바벨론 왕의 몰락이에요.

그 왕의 마음이 이랬어요.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자리를 높이리라… 가장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14:13-14). 바벨탑 사람들의 마음과 똑같아요. 그리고 결말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14:15). 스스로 높아지려던 자는 떨어지고, 반대로 스스로 낮아지신 분은 높아지셨어요(빌 2:6-9).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부르세요.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계 22:16). 진짜 새벽 별은 스스로 낮아지신 예수님이세요.

※ 14:12를 사탄의 타락으로 읽는 해석은 교부 시대부터 있었지만, 본문의 일차적인 대상은 바벨론 왕이라는 것이 대부분 학자들의 견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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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까지 오르려는 교만이 내 안에 없는지 돌아보고, 스스로 낮아지신 참된 새벽 별을 따라갑니다.
5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인가,
"광야에서 길을 예비하라"인가

이사야 40:1-11 · 마태복음 3:3

이사야 40장은 이렇게 시작해요.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40:1). 39장까지 심판을 외치던 책이 갑자기 위로를 노래해요. 그리고 이어서 유명한 구절이 나와요.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40:3).

재밌는 것은 이 구절의 띄어 읽기예요. 히브리어 본문은 "외치는 자의 소리,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로 읽혀요. 길을 예비할 장소가 광야예요. 그런데 복음서는 헬라어 칠십인역을 따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인용해요(마 3:3). 외치는 사람이 광야에 있는 거예요. 😄 실제로 침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외쳤으니, 두 읽기가 다 들어맞았어요.

더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사해 사본을 남긴 쿰란 공동체는 바로 이 구절을 근거로 예루살렘을 떠나 광야로 들어갔어요. 그들의 규칙서(공동체 규칙)에는 "광야에서 길을 예비하라"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율법을 공부하는 것이 그 길이라고 적혀 있어요. 같은 시대, 같은 광야에서 한쪽은 율법 공부로 길을 예비했고, 침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며 오신 그분을 가리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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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광야에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며, 굽은 것을 곧게 하고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는 회개를 구합니다.
6

마차 위에서 소리 내어 읽던 53장,
"선지자가 말한 이는 누구냐"

이사야 52:13-53:12 · 사도행전 8:26-35

이사야 52:13–53:12은 "여호와의 종"이 우리 대신 고난받는 노래예요.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53:3).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53:7).

사도행전 8장에 이 구절을 읽고 있는 사람이 나와요. 에티오피아 여왕의 재무를 맡은 내시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고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이사야서를 소리 내어 읽고 있었어요. 😄 옛날에는 혼자 읽을 때도 소리 내어 읽는 일이 흔했어요. 그래서 빌립이 그 소리를 듣고 다가가 물을 수 있었어요. "읽는 것을 깨닫느냐". 내시가 되물어요.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은 누구를 가리킴이냐"(행 8:34). 빌립은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어요"(8:35).

53장에는 놀라운 디테일도 있어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되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53:9). 예수님은 두 강도와 함께 처형되셨지만,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묻히셨어요(마 27:57-60). 1947년 발견된 대이사야 두루마리에도 이 53장이 온전히 들어 있어요. 예수님이 오시기 백 년도 더 전에 필사된 두루마리예요. 선지자가 말한 그 종은 우리 대신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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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가 말한 이는 누구냐"는 질문 앞에서, 내 허물 때문에 찔리신 그분의 이름을 고백합니다.
7

새 하늘과 새 땅,
그런데 뱀은 여전히 흙을 먹는다

이사야 65:17-25 · 66:22-24 · 요한계시록 21:1

이사야서의 마지막 장들은 하나님이 새로 지으실 세상을 노래해요.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65:17). 거기서는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 들리지 않고,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할 만큼 오래 살고, 자기가 지은 집에 자기가 살아요(65:19-22).

그리고 평화의 그림이 나와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65:25). 😄 그런데 자세히 보세요. 모든 짐승이 평화를 누리는데 뱀만은 여전히 "흙을 양식으로" 삼아요. 에덴에서 뱀에게 내려진 저주, "네가 사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 3:14)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새 세상에서도 악의 근원은 회복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사야서의 마지막 절(66:24)은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비참한 끝을 말하는 무거운 구절이에요. 그래서 유대 회당에서는 이사야서 마지막 장을 읽을 때, 마지막 절을 읽은 뒤 바로 앞 절을 한 번 더 읽어요.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66:23). 😄 무거운 말로 끝내지 않고 예배로 끝내려는 거예요. 요한은 밧모 섬에서 이사야가 노래한 그 세상을 보았어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계 21:1).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예수님이 그 나라의 주인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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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부르짖음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오늘 내 자리에서 해함도 상함도 없는 평화를 심습니다.
맺는 글
거룩하신 하나님이
찔리신 종이 되어 오셨다

이사야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시작해요. 그 거룩 앞에서 사람은 "화로다 나여" 외칠 수밖에 없어요. 이스라엘도 열방도 그 거룩 앞에서 심판을 피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사야서는 심판에서 멈추지 않고 "위로하라"로 넘어가요.

그 위로의 한가운데 고난받는 종이 서 있어요.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멸하시는 대신, 친히 우리 죄를 짊어지는 종이 되어 오셨어요. 그래서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된 작은 복음서예요. 그 복음의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예수예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53:5)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